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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왜 단일국가로 FIFA에 참가하지 않을까?(feat. 축구와 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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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왜 단일국가로 FIFA에 참가하지 않을까?(feat. 축구와 럭비)

by 오늘의 TIP 2022.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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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을 보다 보면 영국은 영국 단일 국가가 아닌 4개국으로 참여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된 걸까요?? 오늘은 축구의 탄생 배경과 FIFA의 탄생 그리고 그렇게 함께 탄생된 럭비까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축구는 원래 폭력적인 살인 축제였다?

 

영국인들은 덴마크의 탄압과 폭정에 시달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덴마크는 바이킹의 후예로 6~10세기에 국가를 형성하게 되는데요. 이 시기를 바이킹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시대의 덴마크는 영국 동부, 스웨덴 남부, 지중해 연안까지 침략을 하고 후에 영국의 북부지역까지 점령하면서 영국을 정복하여 실질 통치를 하던 나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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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영국인들은 덴마크의 억압에 시달렸으며 후에 덴마크를 몰아내고 죽은 덴마크인의 두개골을 파내어 발로 차고 놀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덴마크인의 두개골을 발로 차고 놀게 되다가 그 뒤 두개골 대신 소의 오줌보에 바람을 불어넣어 차는 것으로 변천했습니다. 12세기에 와서 이와 같은 묘한 운동은 전국에 성행되어 200-300명이 떼를 지어

도시나 농촌에서 이 경기를 해오다 차츰 개량 발전하여 20명 전후의 사람이 편을 짜서 대항전을 벌이기에 이르렀습니다.

급기야 영국이 국책으로 실시하던 활쏘기가 이 새로운 경기에 눌려가자 헨리 2세는 법으로 마을별로 성행하던 축구경기를 중지시켰습니다. 이로써 400년간 축구의 기원이라 할 경기는 종적을 감추게 되고, 그 후

1633년 제임스 1세는 축구가 단결력과 조직력으로 외적에 대한 국방에 큰 힘이 된다고 판단하여

축구 경기 금지령을 해제시켜 점차적으로 당시 7 대양에 고루 펼쳐진

해가지지 않는 나라 영국 영토에 대대적으로 보급했습니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

 

이로써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 있는 곳에 축구는 항상 존재했고, 

이로 인해 축구는 온 세계에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당시 상류계급에서 즐기는 오락 단계에 있든 풋볼은 영국의 세력 확장과 더불어

유럽의 각국에 급속히 확장되어 갔습니다. 오늘날처럼 여행이 제한이 없고 누구나 간단한 서류와

영국의 파운드와 금만 지참하여 유럽 여러 나라와 러시아까지 여행할 수 있어서 영국의 왕족들과

유럽의 왕족들은 서로 가족적인 유대를 가질 수가 있었고,

영국의 상류계급은 대부분 유럽에 친척이나 연고자를 가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Public school이나 대학에 가지 못한 상류계급 자제들은 스위스나 독일의 명문 대학에 유학을 갔는데요.

그렇게 그들은 여행지 또는 유학 간 곳으로 취미인 축구를 가지고 갔습니다.

축구는 그렇게 F.A의 새로운 룰을 어느 정도 지키면서 1865년에는 독일의 명문대학에서 플레이하기 시작했습니다.

1975년 독일의 명문대학인 칼스루에와 옥스퍼드대학이 친선 경기를 칼스루에에서 거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경기가 축구 역사에 있어서 최초의 해외 원정이란 새로운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국제적인 첫 축구 경기는 1872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경기가 있었고,

그 후에 1884년 처음으로 British Home Championship으로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축구팀의 경기가 있었습니다.

그 후 축구(football)의 사업성을 알아본 프랑스와 벨기에가 피파를 1904년에 만들었고,

여러 국가들이 피파에 가입을 했습니다. 하지만 월드컵이란 개념이 생기기 전부터 축구를 해오던

종주국 영국은 국가별 참가를 반대하고 잉글랜드,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따로

피파에 가입할 것 주장을 해서 영국은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각자 피파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번외 럭비의 탄생

럭비의 시초는 1823년 영국 럭비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이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football경기를 하는 도중 윌리엄 웹 엘리스(William Webb Ellis)라는 소년이

규칙에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을 손에 들고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상대 선수들은 무의식적으로 이 선수를 제지하려 하였으나 이 소년은

한 손에 공을 껴안고 다른 한 손으로 덤벼드는 다른 선수를 밀어 제치고 전진하여

골 안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 우발적인 사건으로 지금의 럭비 경기가 생겨났습니다.

럭비 경기는 1893년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실시된 후 영국 본토와 자치령,

그리고 유럽에도 보급되어 순수 아마추어 경기로서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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